차붐 가라사대

CHABOOM DROPPIN’ KNOWLEDGE

 

 

어릴 적, 영화와 힙합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후자를 선택하게 한 질문은 하나였다. ‘젊어 성공할 수 있는가.’ 그럼, 슈퍼스타가 돼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가사를 쓰기 시작했고, MPC2000XL 샘플러를 들고 유학 길에 올랐다. 한 가지를 깨우치는 데 반년이 걸리는 여정이었지만, 이후엔 비트를 만들어 팔기도 하는 나날을 보냈다. 근본적으로, 프로듀서로서 시작을 한 거다. 이내 랩이 필요했고, 한국에 돌아와 다시 랩을 시작했다. 대학로 등지에서 공연을 하고, 지금까지 긴밀하게 지내는 신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다.

 

 

래퍼들은 위만 본다. 옆이나, 아래는 시야에 머무르지 않는다. 하지만, 끝없이 위로만 올라갈 수는 없는 것. 정체되는 시기가 온다. 내 경우도 그렇다. 생각해보면, 내가 가장 ‘핫’했던 시기는 신에 데뷔할 때다. 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예 못했다. 하지만 ‘박수 칠 때 떠나라’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티스트에게 은퇴 시기란 ‘타인이 정해주는’ 것이라 본다. 더 이상 내 음악을 들어주지 않을 때, 나는 사실상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결국, 영원하지 않고, 유한하다. 그러니, ‘Chill’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고 싶다. 이른 나이에 빠르게 성공을 맛본다면 그보다 좋을 게 없겠지. 하지만, <서칭 포 슈가맨>의 이야기처럼, 좋은 음악이 거부당할 수도 있고 시대와 맞물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 마지막에 남는 건 결국, ‘계속 하고 있는’ 이들이다.

 

예전엔 스트리트 크레드(Street cred)가 긴요했다. 아티스트와 루키들의 인정은 필수적이었다. 반면, ‘사운드클라우드 뮤지션’의 성공이 메인스트림이 된 지금은 좀 더 극단적이고, 자극적으로 어필하는지의 여부가 많은 것을 좌우한다. 이런 환경에서 내가 생존하는 방법은 무엇일지 많이 고민했다. 오랜 시간 활동해온 이라면 누구나 떠올렸을 만한 고민이다. 또 어떤 변화가 다가올지, 이제는 미지수다. 그래서, 손을 놨다. 시류의 흐름에 몸을 맡긴달까. <쇼미더머니 777>에 나간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이제는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는 하나의 흐름을 살펴보는 것. 호응이든, 비판이든, 의견을 내려면 적어도 스스로 경험한 후여야 하지 않겠나.

 

 

모두가 뻔뻔하고 이기적이길 바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움 받을 용기가 없다. 근데, 미움 받을 용기? 낼 필요 없다. 굳이 왜 내나, 예쁨 받으면 되지. 하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 그런 자의식은 분리해야 하는 개념이다. 적어도, 하는 일에 있어 정점을 찍고 싶다면. 그런 면에서, ‘차붐’이 진짜 나에 가깝다. 오히려, ‘차종혁’이 기믹(Gimmick)이라 하겠다. ‘철이 들었’어야 했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야 했고, 그래서 많은 걸 맞춰가며 변했다. 나는 그 모두를 온전히, 자의적으로 잃었다. 차붐은 미움 받을 용기가 있고, 때문에 버텨왔다. 그냥, 원하는 걸 이야기하는 것. 처음, 안산이라는 지역을 샤웃아웃(Shoutout) 했을 때, 내가 받았던 건 못마땅한 시선뿐이었다. ‘어차피 서울에서 할 거면서, 왜?’ 십XX란 욕을 가사에 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차붐은 이런 이런 힙합을 한다’며 많은 이들은 나를 재단해내기에 바빴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트렌디한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시대에도 변화가 온다. 만약 내가 <쇼미더머니> 시즌 2나 3에 나가서 ‘젖꼭지’를 언급하고, 마냥 현재처럼 했다면? ‘죽어도 좋아’에 있는 ‘예술가 난 루왁보다 더 비싼 똥을 싸’라는 가사도 그냥, 쓰고 싶었던 거다. 그게 이젠, 심지어 검열도 없이 나가더라. 그만큼 문화를 이해해주고, 비유라든가 하는 예술적 명분을 인정해주는 거다. 모두, 앞에 나서서 부딪히고 싸웠던 이전 세대 뮤지션들 덕이다. 모든 건 다 같이 만들어온 거다. 음악을 하는 모두가. 나 또한 아주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자랑스러울 거다. 물론, 전방에 나선 파이터보다는, 광대에 가깝지 않나 생각하지만.

 

 

위안이 되고 싶다. 직업이 광대이다 보니. 재미가 되었든, 위로가 되었든, 카타르시스나 즐거움이 되었든, 나는 위안이 되고 싶다. 작년 4월, ‘사드’로 인해 사업에 타격을 받고 지게 된 어마어마한 빚을 올해 4월까지 정신없이 갚아나갔다. 아직 마무리 짓진 못했지만, 빚을 제1 금융권으로 전환하고, 현재 운영하는 회사에서 새로 데뷔하는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러 다녀왔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쓰러져버렸다. 한 달 반 정도를 입원해 있었다. <쇼미>에 나간 게 그때다. 방송을 3달 하고 나니 올해가 끝났다. 그냥, 날아가버린 것 같다. 올해만이 아니라 근 2년이. 정상적인 생활이 어떤 건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내년엔, 정상 생활을 회복하는 게 목표다. 원하는 작업을 하며 작업물을 내는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하겠지. 좀, 인간답게 살아봐야겠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한두 개의 싱글을 발표하고, 곧이어 이후 내년 1월에 EP를 내는 게 목표다. <Original> 앨범을 냈을 땐 애초에 활동할 생각이 아니어서 중국에 3년간 머물렀고, 그곳에서 갑작스레 사업이 망하면서, 적어도 내가 만든 인디 레이블을 유지하고자 빠르게 냈던 게 최근 앨범 <Sour>다. 급하게, 어떤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온 터라, 앞으로는 즐겁게, 편안하게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어느 순간, 왜 음악을 그리도 꿈꿨었는지 그 이유를 잃어버렸었다. Year 2019 and on. 죽이는 앨범 만들고, 어마어마하게 돈 벌고, 정상에 서고 싶다. 미친 듯이 할 거다. ‘줏대’와는 거리가 멀지 몰라도. 꺾어도, 꺾이지 않는 게 나다.

 


에디터 원아림 ahrim@thebling.co.kr
포토그래퍼 이정규 (@tvmc_zoomaster)
스타일링 김소연(@myallmyeol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