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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서영호의 향수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본인과 브랜드 ‘00000’에 대해 소개해달라.
브랜드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더라. 영오라고 읽으면 된다. 영이 다섯 개라서 영오고, 내 이름 서영호에서 따왔다. 05가 될 뻔도 했었는데, 이전에 근무하던 비욘드클로젯의 고태용 실장님의 추천으로 지금의 이름이 탄생했다.

맞다, 고태용의 비욘드클로젯 디자인실에서 근무했다고 들었다. 그곳에서 얻은 건 어떤 게 있나.
비욘드클로젯에는 졸작 직후, 실무를 너무 하고 싶어서 찾아보다가 들어가게 됐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실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소재나 패턴이나. 패션을 전공한 학생들은 무조건 패턴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다닐 때 패턴만 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필드에 나와보니 소재도 찾아야 하고 공장 핸들링도 해야 하고, 세금계산서라는 회계나 MD와의 소통까지. 정말 다양하고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특히 소재의 다양성은 충격적이었다. 학생 때는 ‘울은 좋은 것’이라고만 알았지, 혼방에 대해서도 문외한이었고, 이제는 니트, 캐시미어… 어떤 특징이 있는지도 안다.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각 디자이너들의 색깔이 묻어나는 남성 브랜드로서는 두 브랜드가 굉장히 닮았다고 느꼈다. 비욘드클로젯은 ‘프레피 룩’이라는 색깔을 더한다. 00000은 보다 ‘감성적’이다.
내가 고민했던 것 하나가 바로 비욘드클로젯, 고태용, 프레피, 개티, 캐주얼. 이 같은 느낌을 탈피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류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이번 작업에서 소재를 선택할 때에도 비욘드클로젯에서 사용할 법한 소재는 피하려고 했다. 원초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나는 좀 페미닌한 요소를 좋아하는 것 같다. 셔링이 잡힌 것이라든지, 앙고라라든지, 셔츠를 입어도 면 100%보다는 실크 셔츠 같은 것을 어릴 때부터 즐겼다. 영오는 남성복이지만 그런 요소를 넣으려 한다.

JACKET 00000 PANTS adidas Originals.

 

‘아날로그의 끝’과 ‘디지털의 시작’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들었다.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최근에 X세대, Y세대라는 말을 보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싸이월드도 예전엔 혁명적인 디지털 문화였는데, 지금은 아날로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컴퓨터가 막 생겨나던 내 어린 시절이야말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였지 않나 싶다. 삼촌들이 입었던 옷을 보면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왔던 옷들이고 나는 자라면서 현재라는 트렌드를 타고 있으니 내가 바로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 있는 접점이고 그런 세대구나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걸 콘셉트로 잡은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지금의 문화를 전반적으로 이끌어가는 Y세대나 N세대가 열광하는 포인트를 잘 짚었다고 생각한다.
유스컬처부터 고샤루브친스키. 운이 좋게 그런 감성이 시기적으로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 나도 그 세대니까. 하지만 그런 트렌드에 휘둘리고 싶지는 않다. 사실 지금 내가 어떤 것을 느끼면 그것도 트렌드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감정을 옛것들과 잘 믹스하면 뭐든 나올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2018 S/S 는 어떤 감정에서 시작된 건가.
막연하게 80년대를 하자고 생각하고 있다가 내가 좋아하는 펑크가 생각이 났다. 콜드 플레이나 THE XX, 듀란듀란 등. 때마침 영화 <싱스트리트>가 개봉을 했다. 그렇게 해서 아, 80년대 뉴웨이브를 다뤄보자며 시작하게 됐다. 공부를 하던 중 뉴웨이브 중에서도 뉴 로맨티시즘이라는 장르를 알게 됐는데, 남성들이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하고 오버사이즈 실루엣도 성행했더라. 그래서 영오식의 색깔을 입힌 뉴 웨이브, ‘0 WAVE’가 2018 S/S 시즌 콘셉트로 최종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뉴 로맨티시즘이 지금 유행한다면, 나는 이렇게 입고 다니겠다” 하고 만들었다.

JACKET & PANTS All 00000 HOODIE & SHOES All Vans.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차이라고 결론을 내릴 순 없지만. 그때 내가 겪었던 것, 아날로그는 ‘향수’다. 대학생들이 나중에 나이를 먹고 지금을 떠올리면 유스컬처가 아날로그가 될 수도 있는 거다. 단편적인 예로 아까 얘기했던 싸이월드도 그렇고. 나는 아직도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자고 얘기해야 하는 것을 일촌하자고 얘기해서 아재 소리를 듣기도 한다.

디지털은 너무 빠르다. 매일매일이 다르다. 덕분에 더 빨리 나이를 먹는 기분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00000는 어떻게 대처할 예정인가.
조급해하지 않고 그냥 적응하면서 가면 되지 않을까. 솔직히 조급해한다. 빠른 걸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고, 빠르지만 어제나 오늘의 일이 과거가 될 수 있고. 붙잡을 수 없지 않나. 내가 잘 맞춰가면 되지 않을까.

이제 막 출범한 브랜드에게 너무 먼 미래를 얘기한 건 아닌가 싶다. 지금 00000은 브랜드로서 어떤 단계까지 왔는지 궁금하다.
10단계로 나누면 이제 0단계. 이제 시작이니.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오로지 패기만을 가지고 나왔다고. 실제로 해보니 생각보다 더 어렵더라. 특히 금전적인 부분도 그렇다. 옷 만드는 데만 비용이 많이 드는데 사무실을 차리면 유지비도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알아보다가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 들어가게 되었다. 비욘드클로젯에서 독립하고부터 공고가 나와 그 때부터 준비했다. 비용 부분보다 그 공간이 다른 디자이너들과 함께 쓰는 공간이기 때문에 정보 공유나 디자이너끼리의 교류, 세무 관련 상담의 지원이 좋더라.

최근 ‘패션쇼’의 의미에 대해 많은 디자이너가 회의감이랄까 의구심을 갖고 있지 않나. 당신은 어떤가. 다음 시즌에 본인만의 런웨이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당신의 옷을 올릴 것인가?
너무 하고 싶다. 디자이너가 되고자 결심하게 된 계기 중  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요즘은 ‘쇼 나우 바이 나우’ 등 새로운 형태나 시스템의 쇼가 생기고 있다. 아직은 쇼에 대한 환상이 크다. 해봐야 단점인 걸 안다, 지금 나에겐 그저 꿈이지 않나. 좋거나 안 좋거나, 일단은 경험해보고 싶다. 2018 S/S로 런웨이로 꾸민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뉴 웨이브 음악에 메이크업도 남성복이기는 하나 여성적인 포인트를 주고, 묘한 느낌을 위해 연기도 피우고.

남성 컬렉션과 여성 컬렉션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대중들의 판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남성복이 됐든 여성복이 됐든, 최근 스텔라 맥카트니도 남성복을 보여줬듯 자신 있으면 무엇이든 하면 되지 않나 싶다. 여자와 남자의 경계는 없는 것 같다. 다만 나 스스로는 아직 여성들이 좋아할 여성복을 만들 자신이 없다. 그리고 나는 오래전부터 남성복을 하고 싶었다.

좋은 영향을 얻었다거나 재밌다고 느낀 디자이너나 브랜드가 있는지 궁금하다.
J.W. 앤더슨 너무 좋아한다. 유니섹스적인 느낌도 있고. 로에베도 너무 잘하고. 요즘은 웨일스 보너(Wales Bonner). 자기 색깔을 본인만의 방식으로 잘 풀고 있는 것 같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디자이너 서영호와 00000를 대변해줄 수 있는 단어 한 가지를 골라보자.
디자이너 서영호=영오(00000). 우리는 하나다.

1월호다. 지난 얘기는 하지 말자. 2018년의 목표가 있다면?
인지도를 얻고 싶다. 단적인 예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87명이다.(웃음) 알아주는 사람도 반응도 없으니까 혼자 하는 느낌이더라. 그래서 이번엔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싶다

 


에디터 이하윤
포토 오태진
헤어 & 메이크업 서채원
모델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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